왜 우리는 내면의 모순을 모른 척하고 살아갈까?
“나는 정직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면서 작은 거짓말을 하고, “환경이 중요하다”고 외치면서 플라스틱 컵을 쓴다? 우리는 어째서 스스로 설정한 가치와 실제 행동 사이의 모순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 있는 걸까요?
인간은 원래 모순적인 존재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 부딪힙니다. 공정함을 주장하면서 편향된 판단을 하거나, 효율을 강조하면서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죠. 이런 모습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질적으로 모순을 품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설명합니다. 자신의 믿음과 행동 사이에 불일치가 생겼을 때 느끼는 심리적 불편함을 말하죠. 이 불편함은 때때로 우리를 변화시키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스스로 그 모순을 정당화하거나 회피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왜 모순을 자각하면서도 외면할까?
모순을 인정하는 일은 자존감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나는 원칙 있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해왔는데, 어느 순간 그 원칙을 어긴 자신을 마주하게 되면 정체성에 균열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을 ‘모른 척’함으로써 자아를 보호하려 합니다.
예를 들어, 윤리적 소비를 주장하던 사람이 값싼 패스트패션을 구매한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는 “이번 한 번쯤은 괜찮겠지”, “요즘 다 이렇게 사는데 뭐”라는 식으로 자기합리화(self-justification)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회피는 의도적인 거짓이 아니라, 심리적 생존 전략입니다. 완벽하게 일관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 피곤하고, 때로는 불가능하기에, 인간은 스스로의 모순을 의식적으로 밀어내는 법을 발달시켜온 것이죠.
모순은 무조건 나쁜 걸까?
의외일 수 있지만, 모순이 항상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모순을 자각한다는 것은 오히려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뜻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흑백논리로 설명되지 않듯, 우리의 감정과 가치 역시 양가적이고 복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예술, 철학, 인간관계 같은 영역은 모순 속에서 더 풍부해집니다. 사랑과 증오, 책임과 자유, 욕망과 죄책감… 이처럼 상반된 감정들이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깊이 있는 이해와 성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즉, 문제는 모순 자체가 아니라, 그 모순을 외면하고 무의식적으로 반복할 때입니다. 자각된 모순은 성장을 낳지만, 무시된 모순은 자기기만을 낳습니다.
현대 사회는 모순을 조장하는가?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는 정보와 역할 속에서 살아갑니다. 직장에서는 성과 중심의 이기심을 요구받고, 집에서는 배려와 희생을 기대받습니다. SNS에서는 ‘나다움’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남과 비교하는 시선’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사회적 기대와 개인적 가치 사이의 충돌은 우리를 반복적으로 모순에 빠뜨립니다. 문제는 이런 모순이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가 넘치는 세상에서 ‘미니멀리즘’을 외치는 것은 어쩌면 구조적인 아이러니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현대인은 끊임없이 균형을 조정해야 하는 심리적 곡예사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모순을 직면하고 다루는 방법
모순을 줄이기 위한 첫걸음은 회피보다 인식입니다. 내가 왜 이런 모순된 행동을 했는지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내가 원래 싫어하던 방식인데 왜 선택했지?”라는 자문은 불편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성찰의 도구입니다.
그 다음은 자기 비난이 아닌, 자기 이해입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때로 흔들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중요한 건 모순을 줄이기 위한 작은 시도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정직하고 일관된 나를 향해 나아가는 것 말이죠.
또한 타인의 모순을 만났을 때도, 공격보다 공감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누구나 자기 기준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갑니다. 그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서로의 모순을 비난하기보다는 이해하는 데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 모순을 인정할 때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
우리는 모순 속에 살아갑니다. 때론 모순을 외면하고, 때론 그것에 괴로워하며.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모순을 인식하고, 직면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완벽함은 불가능하지만, 성찰은 가능하고, 변화는 언제든 시작될 수 있습니다. 모순 없는 삶이 아니라, 모순을 다룰 줄 아는 태도—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성숙 아닐까요?